질문 없은 대학 강의실
카이스트에서 해양시스템공학을 가르치는 전(前) 노르웨이 공과대학의 폴 베르간(Bergan) 교수. 조선해양 분야에 적용되는 기초과학의 세계적 석학인 그는 2009년 9월 처음 한국 대학에서 수업을 하면서 당황했다고 한다. 강의시간에 학생들이 말을 듣기만 하고, 토론은커녕 아예 질문조차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학생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려고 오히려 그가 "혹시 궁금한 것 없느냐" "이해 안되는 내용은 무엇이냐"고 물었지만, 1~2명 정도만 질문할 뿐이었다.
본지가 한국연구재단에 의뢰해 한국 대학에서 연구·강의하는 해외 석학(碩學) 87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한국 학생들이 수업 시간에 질문을 자주 한다"고 답한 비율은 6.9%에 지나지 않았다. 그동안 가르쳐본 외국 학생과 한국 대학생을 비교할 때 "한국 학생이 더 적극적으로 질문한다"고 대답한 석학은 단 2명(2.3%)이었다.
일방적 지식 전달형의 이같은 한국식 대학교육은 산업화 시대 인력을 키울수는 있을지 몰라도, 대학생 전반의 지적(知的) 수준과 창의력을 업그레드하고 혁신과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자본주의 4.0시대에는 맞지 않는다고 그들은 지적했다.
◇질문 없는 강의실
스웨덴 왕립과학원 회원으로 노벨위원회 물리위원장을 역임한 스웨덴 예테보리대 물리학과 매츠 존슨(Jonson) 교수(건국대 초빙교수)도 "한국 학생들은 매우 큰 꿈을 꾸고 열심히 공부하는데도, 강의나 토론을 할 때 질문하기를 망설여 깜짝 놀랐다"고 했다. "기존 학문에 도전하고 비판하지 않는 학생들이 자라서 세계를 이끌 사회·경제·문화적 혁신을 이끌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도 했다.
'고용 없는 성장' 구조로 고착화된 자본주의 3.0시대와는 달리, 자본주의 4.0시대에는 창의적 인재가 나와 사회적 부가가치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나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 산업구조와 학문의 틀을 깨기 위해 경쟁하는 인재들이 배출돼야 가능하다. 미국의 기업과 정부, 대학에서 연구하며 학생들을 가르친 경험이 있는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조지 퍼스트(Furst) 교수는 "미국 학생들은 교수가 준비한 강의 내용을 벗어나는 질문도 마구 던져 교수와 학생 모두가 새로운 시각에서 공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 석학들은 듣기만 하는 한국 대학생들의 수업 태도는 초·중·고교부터 주입식 교육을 받아왔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 배출된 인력은 자본주의 3.0시대에는 생존할 수 있지만, 미래 사회는 전혀 다른 인재상(像)이 요구된다고 외국인 교수들은 지적했다. 조지 퍼스트 교수는 "현재 한국은 국가적 과제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산업과 연결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며 "초·중·고교에서 '시험 준비'를 위한 공부만 하고, 대학 강의도 이렇게 진행되면 새로운 아이디어를 기대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4.0에 대비한 교육을"
해외 석학들은 "혁신을 이끌 인재가 나오려면 교과서 중심의 교육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베르간 교수는 "한국 학생들은 교과서 내용을 그대로 외우고 정형화된 종이 시험을 준비한다"며 "반면, 내가 가르쳐 본 노르웨이와 미국 학생들은 책에 적힌 지식을 벗어나 다른 사람과 아이디어를 교환하면서 자신만의 '독립적인 생각'을 키운다"고 말했다.
해외 석학의 절반 이상(61%)이 "한국 학생들의 지적(知的) 수준이 우수하다"고 평가하면서도, 자본주의 4.0시대를 준비하기 위해 교육방식은 당장 바뀌어야 한다고 대답했다. 예컨대 "대학에서 학생들의 창의성과 문제의식을 키워주고"(51%), "기업에서 필요한 실무능력(31%)을 가르쳐야 한다"고 답했다.
베르간 교수는 "한국의 학교 시스템은 '개인의 지식'을 가르치는 데만 집중됐다"며 "이런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초등학교 때부터 학생들이 스스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토론하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했다. 퍼스트 교수는 "그동안 한국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한국 학생들이 누구보다 잠재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며 "잠재력을 끌어내기 위해 국적이 다르거나 생활 수준이 다른 환경에서 자란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며 '새로운 아이디어'를 찾을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Source: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12/12/2011121200226.html?news_top